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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생각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

by 이의찬 2025. 9. 27.

글을 작성하게 된 이유

최근에 지인들과 밥을 먹다가 고민거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보다 다섯 살 많은 형인데, 고민이 두 가지 있다고 했다. 

첫째는 "왜 이렇게 힘들게 일하면서 살아야할까?"였고, 둘째는 "행복이란 뭘까?"였다. 그래서 내가 평상시에 생각하고 있던 일해야하는 이유와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다른 지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명확하지 않던 생각이 정리되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잊기 전에 기록할 겸 블로그에 써보려고 한다.

샤라웃 투 뽕족

우리는 왜 사는가?

우선 이것부터 시작하겠다. 삶에는 이유가 없다.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다. 그리고 손흥민, 김연아, 빌 게이츠, 푸틴 모두 다 같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내던져진 존재고 스스로 원해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이 바로 하이데거가 말하는 피투성이다. 

그러면 우리는 왜 살아야하며 어떻게 살아야할까?

 

이것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니체도 찾아보고 카뮈도 찾아봤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잘 와닿은 건 사르트르다. 정확히는 세 철학자 중 사르트르 > 카뮈 > 니체 순으로 마음이 갔다. 그리고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유를 추측해보았다.

니체는 위버멘쉬를 이야기한다. 기존의 도덕과 가치들이 무너진 상황에서 인간은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존재, 즉 초인이 되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집단의 도덕은 약자들의 원한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초인이 되기 위해서는 개인이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며 자신만의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뮈는 반항을 이야기한다. 삶의 부조리함을 인정하되 그것에 굴복하지 말고 끝까지 저항하라는 것이다. 영원히 바위를 산 위로 올려야만 하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고 말하듯이, 현실은 무의미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이런 현실에 충실함으로서 반항해야 한다는 것이다. 카뮈는 부조리한 세상에서 타인과의 연대를 통해 함께 현실에 대해서 반항해야한다고 말했다.

사르트르는 기투성을 이야기한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우리에게는 미리 정해진 본질이 없기에 스스로를 계속해서 만들어나가야한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그에 잘못된 길은 없으며, 그것이 인간의 자유라고 생각했다. 또한 이 선택에 타인과의 관계도 무시할 수 없다고 봤다. 개인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찾을 수 있으며, 개인의 선택이 모든 인간을 위한 선택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개인을 이야기하는 니체보다는 집단을 이야기하는 카뮈가, 부정적인 현실을 이야기하는 카뮈보다는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르트르에게서 매력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내가 생각하는 삶의 이유를 정의해보았다.

삶의 이유는 타인과의 관계성에서 온다

캐스트 어웨이를 생각해보자. 주인공은 표류당해서 무인도로 떠내려갔다. 무인도에서 기절한 주인공이 깨어나서 최소한의 의식주를 확보한 다음 배구공에 자신의 핏자국이 손바닥 모양으로 찍힌 것을 보고 윌슨이라고 이름붙인다. 그리고 4년을 함께한다.

주인공은 윌슨과 대화한다. 고민을 털어놓고, 계획을 세우고, 때로는 다투기도 한다. 윌슨은 당연히 대답하지 않지만 주인공에게는 소중한 동반자가 된다. 그런데 섬을 탈출하다가 윌슨이 떠내려가자 주인공은 진심으로 윌슨에게 미안해하면서 오열한다. 그냥 배구공일 뿐인데도 말이다.

캐스트 어웨이의 <윌슨>

이건 극단적인 상황이지만 우리 일상에서도 비슷한 일들을 찾아볼 수 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에 따라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도 늘어났다. 강아지나 고양이와 대화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사람들은 그들에게 말을 걸고 감정을 투영한다. 이것 역시도 관계성에서 삶을 유지하기 위한 본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더 직접적인 증거도 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만 봐도 드러난다. 2022년 1월 발표한 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 성인의 18.9%가 우울 위험군으로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약 5배가 증가하였고, 자살생각을 하고 있는 비율은 13.6%로 이는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비해 40% 증가했다.

물론 경제적 어려움같은 다른 요소들도 있겠지만, 가장 큰 변화는 사람들과의 만남이 제한되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기에 메타버스가 크게 흥행했던 것 역시도 마찬가지 이유일 것이다.

고로 내 생각은 그렇다. 우리는 삶의 의미를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찾으려고 한다. 

열심히 살아야하는 이유

그럼 이제 형의 질문에 답해보자. 우선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행복을 위해서는 관계에서의 주체성 역시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개인들이 만나서 관계를 맺어야한다. 의존적이거나 일방적인 관계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기대기만 하거나, 반대로 누군가가 나에게만 의존하려고 한다면 그 관계는 언젠가 파탄이 날 수밖에 없다. 관계가 건강하려면 서로가 독립적인 개체로서 자신의 몫을 해내면서 만나야 한다.

사르트르가 한 말중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말인 "타인은 지옥이다." 역시 이와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가 건강하지 않다면, 다른 사람이 나를 대상화하는 것에 크게 흔들리게 되고, 곧 주체성을 잃어버리게 되며 타인을 지옥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열심히 살아야 한다. 일을 해야 하고, 스스로를 발전시켜야 하고,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은 힘들다. 매일 아침 일어나서 출근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실패도 하고, 스트레스도 받는다. 때로는 '도대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들이 쌓여서 우리를 독립적인 개체로 만들어주고, 그래야만 다른 사람과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

다음으로 두 번째 질문에도 답해보자.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의미 있는 관계 속에서 주체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그들에게 의존하지 않고, 내가 그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때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으면서 오늘 있었던 일들을 나누는 것, 친구와 만나서 뽕족을 먹으며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고 조언을 해주는 것, 연인과 함께 미래를 계획하는 것. 이런 순간들이 행복이다. 하지만 이런 순간들이 가능한 이유는 우리 각자가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힘들어하는 이유는 이런 큰 그림을 종종 잊어버리기 때문인 것 같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주변을 돌아보면 좋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과의 관계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건강한 개인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 글은 사르트르의 철학을 기반으로 제 생각을 짬뽕시켜서 작성했습니다. 따라서 사르트르를 좋아하거나, 철학에 대해서 깊게 아시는 분은 열받으실 포인트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겨우 학사고,, 이제는 개발자니까,, 부디 귀엽게 봐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